신숙주는 세간 사람들에게 변절자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그동안 우리나라 소설이나 TV 드라마에서도 단종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변절자로 묘사되었다. 그 이유는 남효온이 지은「육신전」에서 단종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다. 또 남효온의「육신전」을 단초로 일제 강점기 이후부터 조선인의 혼을 폄하하는 차원에서 신숙주를 변절의 대명사로 소설, 영화, TV드라마에서 등장케 하였다. 과연 신숙주는 변절자인지 궁금하다. 논자는 최초 신숙주를 폄하하는 글을 쓴 남효온의『추강집』 속에 수록된「육신전」을 살펴보던 중에, 1576년 선조 때 발견되어 경연에서 육신전에 대한 잘못된 점을 선조가 열거하면서 질타하였는데, 현재 세간에서 볼 수 있는『추강집』에는 1577년에 간행된 것으로 이 재간본에는 선조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부분이 모두 삭제 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조가 발견한 추강집의 오류는 초간본에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그리하여 선조가 지적한 부분을 모두 개작하여 재간된 간행본이 현재 세간에 발견된『추강집』이므로 이를 위작이 아닐까 반문해 보는 것이다. 한편 신숙주의 충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저술한『해동제국기』라고 논자는 주장한다. 세종의 명을 받아 일본을 다녀온 사행보고서는『세종실록』102권[1443년(세종25년) 10월13일]자 기사에 분명히 ‘일본국(日本國)에 갔던 통신사 변효문(卞孝文)이 돌아와 경상도 옥포(玉浦)에 이르러 치계(馳啓)하기를’ 란 기록으로 보아 사행보고서는 이미 세종 때에 보고한 것이다. 그로부터 28년 후인 성종 때 사행 보고서로 『해동제국기』를 썼다는 말은 맞지 않은 것이다. 또한『 해동제국기』 서문에는 사행 보고서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그것은 왕이 지녀야할 덕목을 열거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착안하여 왜『 해동제국기』를 썼느냐에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함으로 신숙주의 충(忠)의 단면을 밝혀 낸 것이다.
目次
Ⅰ. 머리말 480 Ⅱ. 단종대와 성종대의 의정부 정치 스타일 비교 486 Ⅲ. 남효온의 「육신전」을 다시보다 506 Ⅳ. 맺음말 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