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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지역 독립운동의 일사례 - 김영현과 오석균을 중심으로=A Study on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Wando Region : Focusing on Kim Yeong-hyeon, Oh Seok-gyun | ||
| 作者 | 김희태 (著)=金熹台 (au.) |
|---|---|
| 出處題名 |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Won-Buddhist Thought and Religious Culture |
| 卷期 | v.84 n.0 |
| 出版日期 | 2020.06 |
| 頁次 | 243 - 274 |
| 出版者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The Research Institute of Won-buddhist Thought |
| 出版者網址 | http://www.wth.or.kr |
| 出版地 | Iksan-si, Korea [益山市, 韓國] |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 使用語言 | 韓文=Korean |
| 附註項 | 저자정보: 前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kht1215@hanmail.net) |
| 關鍵詞 | 완도= Wando; Independence movement=독립운동; 김영현=Kim Yeong-hyeon; 오석균=Oh Seok-gyun; 완도소비조합=Wando Consumer Union; 신간회완도군지회=Singanghoe Wando Branch |
| 摘要 | 본고에서는 완도지역 원불교 관련 인사들의 행적을 정리하고 독립운동 사례를 살펴보았다. 소남 김영현(1883-1971)과 미산 오석균(1889-1973)은 교육운동과 사회운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한다. 김영현은 1910-1919년 고금학교, 1921-1924년 상주 조명강습소, 1923 사립교인학교에서 교육운동을 한다. 1927-1934년 해남 북평면 서흥리에 동명학원, 북평면 이진리에 동광학원을 세워 운영한다. 1927년 4월 완도중학원이 설립되고 오석균이 교사로 참여한다. 김영현은 완도소비조합(완도상회) 운동을 주도한다. 완도 청년회 연설과 완도상회 따위가 독립사상을 열렬히 주장하고 일본인 관리와 일본인을 배척하도록 교사하고 선동했다는 죄로 잡혀가 재판을 받게 된다. 1심에서는 징역 3월, 2심에서는 무죄를 받는다. 신간회완도군지회는 완도중학원에서 오석균의 사회로 1927년 8월 28일 창립총회를 했다. 회장은 임재갑, 부회장은 곽동식이었고 김영현은 간사로 참여 하였다. 김영현은 1958년 원불교에 귀의한 뒤 원불교 불목교당을 설립하고, 전답 1만 6천평을 희사하여 현재의 소남훈련원이 만들어졌다. 오석균은 1958년 은산 김현관(1893-1963)의 인도로 입교했고 1961년 73세에 전무출신으로 출가했다. 중앙총부 예감 등을 지냈다. 소남 김영현의 경우는 소득증대를 위해서 농어촌 근대화를 장려했는데 소비조합 운동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미풍양속과 효행을 후진에게 몸소 보였다. 미산 오석균의 경우는 기독교 단체에서 활동하지만, 천도교 등 다른 종교의 청년회와 연합해서 활동하는 이력을 보여 준다. 특히, 김영현과 오석균이 함께 활동하면서 추구한 교육계몽사업은 항일 의식의 고취라는 시대적 소명도 있었지만, 교육을 통해 평등을 추구했다. 이같은 교육운동을 통해 배출된 후학들은 완도 곳곳에서 일어난 독립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이처럼 항일민족독립운동은 시대를 앞서간 선지자들이 당대의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하겠다. 그 같은 에너지가 자연스레 종교운동으로 전환되어 원불교 귀의로 종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
| 目次 | Ⅰ. 머리말 244 Ⅱ. 관련 인물 행적 246 Ⅲ. 독립 운동 사례 253 Ⅵ. 종교 운동 전환 261 Ⅴ. 맺음말 265 |
| ISSN | 17381975 (P) |
| 點閱次數 | 49 |
| 建檔日期 | 2024.06.22 |
| 更新日期 | 2024.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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