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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기 성주 야성송씨의 파리장서운동 참여와 원불교 입교=Gosan-dong Songs’ Independence Movement and join to Won-Buddhism | ||
| 作者 | 서동일 (著)=Seo, Dong-il (au.) |
|---|---|
| 出處題名 |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Won-Buddhist Thought and Religious Culture |
| 卷期 | v.83 n.0 |
| 出版日期 | 2020.03 |
| 頁次 | 183 - 220 |
| 出版者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The Research Institute of Won-buddhist Thought |
| 出版者網址 | http://www.wth.or.kr |
| 出版地 | Iksan-si, Korea [益山市, 韓國] |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 使用語言 | 韓文=Korean |
| 附註項 | 저자정보: 건국대학교 사학과 겸임교수(open7241@korea.kr) |
| 關鍵詞 | 고산동 야성송씨=Songs in Gosan-dogn; 파리장서운동=Pari jangseo undong=Korean Confucian intellectuals’ petition for Korea’s independence to World Peace Conference in Paris; 원불교=Won-Buddhism; 송홍욱=Song Hong-wook; 송준필=Song Jun-pil; 송규선=Song gyu-seon |
| 摘要 | 박중빈에 이어 불법연구회(원불교) 제2대 종사(교주)에 오른 송홍욱은 원래 원불교와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경북 성주의 유력 사족인 고산동 야성송씨 충숙공파 문중에서 태어나 유교를 익히며 자연스럽게 ‘유교인’으로 훈육되었다. 그런데 그가 19세(1918)에 원불교에 입교했다. 이 논문은 1918년 송홍욱이라는 개인에서 출발해 고산동 문중 전체로 확산된 원불교 입교 배경을 역사학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이들의 원불교 입교에 1910년대 말 유림·사족의 종교적 각성과 더불어 특정의 역사적 사건이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1919년의 독립운동(파리장서운동)이라는 사건을 통해 살펴보았다. 고산동 문중은 1919년 이후 두 가지 큰 변화를 겪었다. 파리장서운동의 주도에서 비롯된 총독부의 ‘박해’와 1920년대 후반 이후 문중의 ‘혼란’이었다. 고산동 문중은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에 다수의 ‘범죄자’가 발생하여 탄압을 받았으나, 일부 지도자는 1920년대 후반 이후 총독부의 ‘시정’에 관여했다. 전시체제기에 문중의 질서와 이념은 동요했고 원불교에 대한 관심은 점증했다. |
| 目次 | Ⅰ. 머리말 184 Ⅱ. 성주 고산동 야성송씨 문중의 파리장서운동 참여 187 Ⅲ. 파리장서운동 이후 고산동 문중의 ‘ 혼란’과 원불교 입교 197 Ⅳ. 송인기·송홍욱 부자의 지적 기반과 원불교 인식 206 Ⅴ. 맺음말 215 |
| ISSN | 17381975 (P) |
| 點閱次數 | 87 |
| 建檔日期 | 2024.06.12 |
| 更新日期 | 2024.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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