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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島山 安昌浩의 ‘佛法硏究會’ 방문과 그 성격=Dosan Ahn Chang-ho’s visit to the Buddhist Study Society and its Characteristics | ||
| 作者 | 김도형 (著)=Kim, Do-hyung (au.) |
|---|---|
| 出處題名 |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Won-Buddhist Thought and Religious Culture |
| 卷期 | v.80 n.0 |
| 出版日期 | 2019.06 |
| 頁次 | 39 - 66 |
| 出版者 |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The Research Institute of Won-buddhist Thought |
| 出版者網址 | http://www.wth.or.kr |
| 出版地 | Iksan-si, Korea [益山市, 韓國] |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 使用語言 | 韓文=Korean |
| 附註項 | 저자정보: 독립기념관 연구위원(kimdo3869@hanmail.net) |
| 關鍵詞 | 박중빈=Park Jung-bin(1891~1943); 안창호=Ahn Chang-ho(1878~1938); ‘불법연구회’=Buddhist Study Society=佛法硏究會; 이상촌; 원불교=Won-Buddhism; ideal rural community |
| 摘要 | 독립운동 지도자 가운데 이념이나 노선에 관계없이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만큼 널리 존경받는 인물은 없다. 그는 민족 독립만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았던 애국자이고, 또한 위대한 사상과 고매한 인품을 가진 교육자로 추앙을 받고 있다. 도산은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이송되어 4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위장병으로 1935년 2월 가출옥하였다. 출옥 이후 안창호는 만 2년간 고국의 각 지역을 유력(遊歷)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1936년 2월 안창호는 호남지방 방문시 전라북도 이리(익산)의 ‘불교연구회(佛法硏究會)’ 총본부를 들려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을 만나게 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도산이 각 지방을 순행하면서 독립의식을 고취시킬 것을 두려워한 일제가 그의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가하였기 때문에 공적인 신문 등의 자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도산이 ‘불법연구회’를 방문하여 박중빈과 담화를 나누었다는 것에 사실에 대해서는, 후일 두 사람과 함께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의 증언에 의해 구전되어 전하고 있다. 일제경찰의 엄중한 감시가 있었기 때문에 안창호와 박중빈의 대담은 구체적으로 진행되지는 못하였지만, 두 사람의 이심전심으로 뜻하는 바는 충분히 나누었다. 1936년 2월 안창호가 호남지방을 순행할 당시, 박중빈은 그의 추종자들과 더불어 종교와 경제활동을 조화시킨 이상적인 농촌 공동체인 ‘불법연구회’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안창호는 1910년대부터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이상적인 농촌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였다. 도산은 이상촌 건설을 위해 노력하다가 1932년 4월 윤봉길의거로 인해 중국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다가 1935년 2월 가출옥되면서, 곧바로 자신의 이상촌(모범촌)을 국내에도 만들어 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전국을 순행하였다. 안창호는 일제의 식민지 치하지만 ‘불법연구회’가 모범적인 농촌이라는 말을 들고 익산을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박중빈이 일구어 놓은 ‘불법연구회’의 농촌실태를 직접 시찰하고 창시자 소태산을 만났다. 박중빈을 만난 안창호는 그가 이룬 농촌 공동체에 대해 놀라움 표하고 성공을 치하하였다. 두 사람은 일제 경찰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심중에 있는 깊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하였지만, 모두 ‘이상촌’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안창호는 ‘불법연구회’의 공동체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안창호가 1936년 2월 ‘불법연구회’를 방문한 것은 우연이 아니며, 모든 것을 독립운동의 수단과 방법으로 활용하는 도산의 심원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실력을 양성하여 민족의 독립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안창호의 이상촌(모범촌) 건설에 대한 사상과 박중빈의 생활과 종교 공동체를 성취시키려는 사상은 매우 유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안창호는 ‘불법연구회’를 직접 방문하여 그것을 보고, 자신이 가진 이상촌에 대한 생각을 보다 구체화시켜 나갔던 것이다. |
| 目次 | I. 머리말 41 II. 소태산과 도산의 국내순행 활동 42 III. 도산의 ‘불법연구회’ 방문 자료 검토 50 IV.도산 방문 이후 일제의 탄압 57 V. 맺음말 60 |
| ISSN | 17381975 (P) |
| 點閱次數 | 49 |
| 建檔日期 | 2024.06.09 |
| 更新日期 | 2024.0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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