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구적 근대’의 길로써 동학과 원불교의 공동체운동 - 그 공공적 성격을 중심으로=A Study on Community Movement of Donghak and Won-Buddhism as a Way of ‘Non-Western Modern Era’ - Focus on the Public Characteristic -
이 논문은 근대한국에서 자생한 새 종교 동학과 그 동학의 변증법적 전개라 할 수 있는 원불교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두 종교가 보여준 새로운 종교운동의 내용과 특징을 ‘비서구적 근대’의 관점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특히 동학과 원불교가 보여준 새 종교운동에서 드러나는 ‘공공적 실천’ 사례를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독자적인 근대 즉 ‘비서구적 근대’를 추구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하는 데에 큰 특징이 있다. 구체적으로, 1860년에 창도된 동학의 경우 창시자 수운은 ‘유무상자(有無相資)’로 대표되는 공동체운동을 통해 공공적 실천의 선구가 되었으며, 2대 교주 해월은 서양 열강의 동점 현상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던 조선 민중들에게 국산품 애용을 장려함으로써 민중들의 생활공동체를 지키려 했고, 동학농민혁명 최고지도자 전봉준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 아래, 19세기 조선 민중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서세(西勢)와 조선왕조의 악정(惡政)을 개혁하려는 혁명을 주도했다. 요컨대, 동학의 3대 지도자 모두 서구적 근대에 맞서 독자적인 근대를 추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한편, 동학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학이 풀지 못한 과제를 동학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1916년에 등장한 원불교는 그 출발 단계부터 철저하게 ‘공(公)’ 즉 공공적 실천을 통해 민중 주도의 ‘비서구적 근대’의 길을 추구하고자 했다. 원불교가 개교 당시부터 ‘공’ 즉 공공적 실천을 중시한 사례는 1919년에 이루어진 9인제자의 기도운동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9인제자의 기도운동은 ‘사를 버리고 공을 위하는’ 공공적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9인제자의 기도운동을 통해 확립된 원불교의 공공성 실천의 전통 역시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조선 민중 독자의 근대로의 길, 즉 ‘비서구적 근대’로의 또 다른 길을 제시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