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강증산과 차월곡의 개벽사상과 더불어 이들의 개벽사상이 민족독립운동과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밝힌 논문이다. 크게 다음의 세가지 문제를 논증하였다. 첫째, 신종교의 개벽사상의 출현 배경과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정책과 관련이 있다. 동학을 창도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의 개벽사상은 ‘한민족의 민족혼’을 부활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러한 수운의 개벽사상이 증산과 월곡의 개벽사상을 형성하게 하였는데, 증산의 개벽사상은 월곡의 보천교를 통하여 크게 성장하였지만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정책에 의하여 몰락의 길을 겪게 되었다. 둘째, 증산과 월곡의 개벽사상의 내용은 증산의 행적을 모아 기술된 『대순전경』과『천지개벽경』과 보천교의『보천교연역사』,『보광』,『대도지남』 등의 경전과 잡지 속에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 개벽사상의 요체는 ‘후천선경(後天仙境)의 신정부 건설운동’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증산과 월곡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던 보천교는 일제에 저항한 민족종교운동이었다. 비록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정책에 의하여 본래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실패함으로써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지만, 대종교 및 천도교와 더불어 가장 탄압을 받았다는 점에서 민족독립운동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