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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불교 총본사 건설과 李鍾郁=Reconstruction of Korea Main Buddhist Temple and Lee Jong-wook | ||
| 作者 | 안후상 (著)=安厚相 (au.) |
|---|---|
| 出處題名 | 대각사상=Maha Bodhi Thought=大覺思想 |
| 卷期 | v.10 n.0 |
| 出版日期 | 2007 |
| 頁次 | 545 - 595 |
| 出版者 | 대각사상연구원=Institute of Maha Bodhi Thought |
| 出版者網址 | http://www.taegak.or.kr/ |
| 出版地 | Seoul, Korea [首爾, 韓國] |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 使用語言 | 韓文=Korean |
| 附註項 | 저자정보: 전남대 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
| 關鍵詞 | 일제=Japanese imperialism; 불교=buddhism; 한국불교=Korea buddhism; 총본사=Main Temple; 태고사=Taegosa; 조계사=Jogyesa; 조계종=Jogyejong; 이종욱=Lee Jong-wook; 보천교=Bochongyo; 십일전=Sipiljeon; 한용운=Han Young-un; 조선총독=Joseon government-general |
| 摘要 | 일제하의 한국 불교계의 총본사 건설 운동은 불교계의 상승된 위상에 걸맞게 통합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불교계 내부의 함의가 일제의 불교계 통합 의도를 확인하면서 촉발돼 나타난 측면이 있다. 朝鮮佛敎曹溪宗 總本寺太古寺의 건설을 위해 普天敎 十一殿을 이축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일제로서는 당시 사회 운동 세력으로 급부상한 보천교를 발본색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고, 한국 불교계로서는 건설비용이 만만찮았을 것이기에 보천교 십일전의 이축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축 과정을 간추리자면, 총본산 건설 위원회가 발족되는 1937년 2월부터 총본사 건축이 본격 시작되었다. 같은 해 3월에는 십일전을 일본인으로부터 12,000원에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1937년 5월 5일에는 십일전 해체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같은 해 5월 14일에 철거된 석재와 목재의 운반이 완료되면서 건축은 본격 시작되어, 약 15개월 만인 1938년 10월 10일에 대부분의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같은 해 10월 25일에는 이축한 대웅전에서 낙성 봉불식을 갖게 됨으로써 총본사 대웅전의 건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축 과정에서 소요된 건축 관련 비용은 약 250,000원, 공사에 투입된 연인원은 65,000명, 경복궁 중건 당시 도편수였던 崔元植이 이축을 총괄하였다. 일제 하의 총본사 건설은 한국 불교계의 최대 숙원이자 난제였다. 이처럼 막중하고도 어려운 사업은 적어도 법령으로 한국 불교계를 장악하던 조선 총독부의 인허가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난해한 사업을 李鍾郁에 의해 추진되었고, 그리고 사업이 성공하였다는 점은 이종욱의 특유의 역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적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시 건설의 총책은 이종욱이다. 그 당시 왜 이종욱이었느냐, 하는 점이다. 그는 활동가적인 기질과 사업가적인 남다른 능력을 이미 검증 받은 터였다. 즉, 월정사 부채 문제를 원만히 해결한 전력은 일제나 한국 불교계 보수 성향 주지층의 두터운 신임으로 이어졌다. 한편 한국 불교의 자주적 통합 기구 결성을 주장한 그를 지방의 자주적 성향의 청년 승려층이 지지한 것이다. 총본사 건설은 일제와 보수적 주지층이 만들어놓은 기구에 의해 추진되었지만 그 실무는 이종욱과 자주적 성향의 청년 승려층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총본사 건설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능력은 당대 최고의 권력가들과의 교감을 토대로 하고 있기도 하지만 지방 사찰 수좌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전제로 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이종욱 특유의 역량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이종욱을 보좌하면서 총본사 건설 실무를 맡았던 이들은 대체로 항일 운동을 경험했던 청년 승려들이다. 건축 실무를 주도한 이들을 꼽는다면 李鍾郁․金尙昊․林錫珍․車相明 등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3․1 운동에 참여했고 전국의 사찰과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독립 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경력자들이었다. 이종욱에 의해서 1941년 4월에 ‘朝鮮佛敎曹溪宗 總本寺太古寺’라는 宗名과 寺名이 포함된 寺法을 인가 받음으로써, 1929년부터 시작된 총본산 건설은 일단락 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이종욱은 일제하의 한국 불교를 근대화․체계화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한국 불교의 정체성이 흔들리던 일제의 민족 말살기에, 그 동안 불교가 자리할 수 없었던 중앙에 불교계 핵심 기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 불교를 상징하는 朝鮮佛敎曹溪宗 總本寺太古寺가 들어섬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의미의 첫째는 韓龍雲의 말처럼, ‘朝鮮 佛敎 有史 以來 未曾有의 單一 統制 機關’이라는 점이다. 조계종 성립의 단초를 제공한 총본사 건설은 전통 불교를 고수하면서 근대화된 단일 종단 체계를 유사 이래 처음으로 확립하였음을 뜻한다. 둘째, 한국 불교가 대중 교화에 체계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즉, 도심 한 복판에 한국 불교를 상징하는 정교하고도 웅대한 조선식 건축물이 들어섬으로써 산간의 전통 불교가 도시에로의 적극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해방 이후 한국 최대의 종교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총본사 건설을 계기로 한국 불교계는 前 近代性에서 탈피하여 근대화된 宗團을 꾸릴 수 있었다. 넷째, 총본사 건설에 본말사, 이사판 등 사부대중이 전면 동참함으로써 불교계를 하나로 응집시켰다. 다섯째, 교세의 급격한 확장에 걸맞은 위상을 찾기 위해 한국 불교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중앙에 건축하려 하였다는 점이다. 즉, 급격한 교세 확장에 따른 ‘불교계의 위상 회복 움직임’이 총본사 건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총본사 건설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일제의 민족 말살기에 한국의 분립된 전통 불교를 근대화된 종단으로 통합, 복원했다는 것 자체가 민족적 성과이다. 예컨대, 曹溪宗이라는 전통의 종명을 복원하고 경성 한복판에 전통 양식의 웅대한 총본사 대웅전을 건설한 것 자체가 민족의 전통을 이으려는 한국 불교계의 능동적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The reconstruction campaign of Korean buddhist main temple was derived from confirmation of intention to incorporate buddhism under the Japanese imperialism by internal implication that buddhism with higher status deserved to have an incorporation organization. For construction of Taegosa, the general main temple of Jogyejong, Bochongyo Sipiljeon was removed and reconstructed with the following background: The Japanese power thought that it was a good opportunity to eradicate the root of Bochongyo that emerged as a social movement power and Korea buddhism powers might choose to remove and reconstruct Bochongyo Sipiljeon because they thought its construction expense would be expensive. To sum up the process of its removing and reconstruction, the main temple started to be constructed from February 1937 when the main temple construction committee was organized. On March of the year, Sipiljeon was purchased from a Japanese for 12,000 won and on May 5 1937, the dismantlement was completed. On May 14 of the year, stone and wood materials removed were carried to start construction, and about 15 months later, on October 10. 1938, most of the construction was completed. On October 25 of the year, a Buddhist ritual was provided at the main hall reconstructed to finish the construction of the main hall. The expense required in the process of removing and reconstruction was about 250,000 won, the number of the workers were 65,000, and Choi Won-sik who was a builder of Gyeongbokgung supervised the reconstruction. The project wou |
| 目次 | I. 시작하며 546 II. 총본사 건설 운동의 전개 549 1. 불교계 통일 운동의 흐름 550 2. 총본사 건설과 태고사 557 III. 이종욱의 총본사 건설 565 1. 이종욱의 생애와 성향 565 2. 총본사 건설의 특징 573 IV. 맺으며 581 |
| ISSN | 12291080 (P) |
| 點閱次數 | 29 |
| 建檔日期 | 2023.04.28 |
| 更新日期 | 2023.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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