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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密陽 表忠祠의 沿革에 대한 再照明=History of the shrine Pyochoong in Miryang | ||
| 作者 | 이철헌 (著)=Lee, Cheol-heon (au.) |
|---|---|
| 出處題名 | 불교학보=佛教學報 |
| 卷期 | v.52 n.0 |
| 出版日期 | 2009.08 |
| 頁次 | 125 - 146 |
| 出版者 |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
| 出版者網址 | https://abc.dongguk.edu/kbri/ |
| 出版地 | Korea [韓國] |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 使用語言 | 韓文=Korean |
| 附註項 | 저자정보: 동국대(경주)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
| 關鍵詞 | 四溟堂 惟政=Yujeong; 表忠祠=the temple Pyochoong; 表忠寺; 表忠庵=the shrine Pyochoong; 重興寺=the temple Joonghung; 南鵬=Namboong; the Bawkhaam |
| 摘要 | 四溟堂 惟政이 海印寺에서 입적한 뒤에 승려들은 부도와 비를 세우고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유정의 생가지인 밀양에서도 지역의 유림들과 승려들이 유정이 생전에 지은 백하암에서 향사를 지냈다. 병자호란중에 백하암이 허물어지자 임진년(1712) 봄부터 지역의 士林들이 유정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의 건립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그리하여 갑오년(1714) 3월에 지역 유림에서는 사당건립을 요청하는 士林狀을 내었으며, 을미년(1715)에 우선 사당을 짓고 表忠祠의 현판을 걸었다. 신축년(1721)에는 表忠庵를 완성하고 유정의 영정을 걸었으며 官으로부터 祭需를 받아 춘추로 제향을 지냈다. 南鵬은 1738년에 조정으로부터 位田 5結을 받았으며 影堂碑를 건립하고 임란일기를 간행하는 등 유정을 추모하는 사업을 하였고, 表忠庵을 대대적으로 확장 중수하여 重興寺라 하였다. 月坡 天有가 表忠庵이 협소하고 향사를 올릴 때마다 비바람이 불고 산세가 옹색하여 表忠祠를 靈井寺로 옮기기로 결심하고 예조의 승인을 받아 헌종 5년(1839, 己亥) 봄에 靈井寺로 옮겼으며 절 이름도 表忠寺로 바꿨다. 고종 8년(1871, 辛未)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서원 또한 철폐를 당하였으나, 고종 21년(1884, 甲申) 봄에 지역 사림들의 요청에 의해 府使가 獻官이 되어 春秋로 표충서원의 享禮를 다시 거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After the monk Yujeong(惟政) died at the temple Haein in 1610, monks offered worship. Also Confucians and monks of Miryang where Yujeong was born did it at a small temple, Bawkhaam(白霞庵), he had built by himself. As Bawkhaam was destroyed during the Chinese invasion of Korea in 1636, Confucians intended to rebuild it in 1712. They suggested government help rebuild Yujeong's memorium in 1714. So they built it in 1715 and named it the shrine Pyochoong(表忠祠). The Pyochoongam, a small temple, was built in 1721. Confucians and monks of Miryang prepared a Yujeong's paint and offered worship at ancestral shrine with food given by government in every spring and autumn. Monk Namboong(南鵬) received large field from government to prepare food required in offering worship, set up a stone monument and published the Yujeong's war diary. As Pyochoogam was too small and steep to offer worship, he wanted to relocate the shrine Pyochoong from the Pyochoogam to the temple Youngjeong, but he couldn't do it. Monk Cheonyou(天有) did it under the government's permission in 1839 and changed its name from the temple Youngjeong to the temple Pyochoong. The shrine Pyochoong was closed by governmental order in 1871, and reopened by peaple's demand in 1884. |
| 目次 | I. 시작하는 글 126 II. 表忠祠와 관련한 자료들 127 III. 表忠祠의 창건에 대한 기록 130 IV. 南鵬의 表忠祠 重興 136 V. 靈井寺로 이전 139 VI. 表忠書院 철폐와 復祀 141 VII. 맺는 글 143 |
| ISSN | 12261386 (P) |
| 點閱次數 | 87 |
| 建檔日期 | 2022.10.16 |
| 更新日期 | 2022.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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