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일=Yun Ju-Il; 평양포교당=Pyungyangpogyodang; 한국현대불교=Korean modern Buddhism; 광주선우회=Gwangju Sunwoohoi; 대중불교=the public Buddhism
摘要
현공 윤주일은 1895년 11월 18일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1969년 11월 12일 전주에서 입적할 때까지 한평생 불교활동을 한 선지식이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용성을 스승으로 삼아 출가한 그는 1918년 유점사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평양포교당으로 옮겨 활동하였다. 청년회를 이끌던 그는 1922년 12월 조선불교청년회 평양지회 회장과 1923년 2월 평양불교청년회 회장으로 피선되어 평양불교를 활성화시켰다. 유점사가 설립한 명성학교와 고아원의 교장과 원감을 맡아 교육을 통한 불교의 사회적 저변 확대에 노력하였다. 사회활동에도 참여하여 백선행 기념과, 인정도서관 등 공공기관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여 불교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노력하였다. 광복 후 1947년 남하 한 그는 열악한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한 새불교 운동에 전념하였다. 활동내용을 살펴보면 역경과 저술활동 그리고 법회를 통한 대중교화로 요약된다. 역경과 저술활동은 청년시절 용성과 만해에게서 받은 영향과 함께 불자의 사명의식을 갖고 행한 불사였다. 그런 의식이었기에 당시 척박한 불교출판 속에서 현공의 저술은 신행의 나침판이 될 수 있었다. 현공의 법회를 통한 대중교화 활동은 크게 광주와 전주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법회를 통해 불자를 양성하였다. 그것은 포교만이 불교가 급변하는 사회에 주체적인 자세를 견지할 수 있는 방안이며, 타종교와의 경쟁에서 불교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인식한 신념의 실천이었다. 이런 현공의 활동은 사회적 지평이 미흡한 당시 불교계로 볼 때 개혁적이었고, 광복 후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한국불교의 나침판 역할을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현공 윤주일의 연구는 매우 뜻이 깊다. 격정의 세월을 지낸 수행자의 헌신과 현대사회에서 불교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여실하게 보여주었고, 개혁인식과 대중 활동을 통해 불교가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실천지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Hyunkong Yun Jooil was born November 18, 1895 in Gangjin, Jeonnam Province, and died November 12, 1969 in Jeonju Jeonbuk Province. He has worked a lifetime to reform Buddhism. Hyunkong Yun Jooil who studied Buddhism under Baik Yongseong, Han Yongwoon and moved to Pyongyang Pogyodang in 1918 led a youth group tried to broaden the social base of Buddhism. He tried to participate in social activities Korean Buddhism expansion and devoted himself to enlightening the people by way of education. After the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he educated nuns and believers in Seonhakwon. He settled in Gwangju and Jeonju during the Korean War, and devoted his life to renewing the Korean modern Buddhism. In this area he was translated a Buddhist text into Korean, edited Korean-Buddhist Bible, written a guide book for the public Buddhism. He makes an effort to open up the future of Korean Buddhism.
目次
Ⅰ. 서론 266 Ⅱ. 개혁인식과 평양청년회 활동 268 Ⅲ. 광복 후 대중불교 활동 278 Ⅳ. 결론 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