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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황 막고 제196굴 <노도차투성변상도>의 검토 | ||
| 作者 | 張姬貞 (著) |
|---|---|
| 出處題名 | 선문화연구=禪文化硏究=Studies of Seon Culture |
| 卷期 | v.9 n.0 |
| 出版日期 | 2010.12 |
| 頁次 | 223 - 266 |
| 出版者 | 한국불교선리연구원=The Korean Institute of Buddhist Seon |
| 出版者網址 | http://seonli.or.kr/ |
| 出版地 | Seoul, Korea [首爾, 韓國] |
| 資料類型 | 期刊論文=Journal Article |
| 使用語言 | 韓文=Korean |
| 附註項 | 저자정보: 청원군립대청호미술관 학예사 |
| 關鍵詞 | 賢愚經; 降魔變文; 敦煌石窟壁畵; 勞度叉鬪聖變相圖; 歸義軍節度使 |
| 摘要 | 勞度差鬪聖變相圖는 석가모니불의 ‘降魔’를 다룬 因緣故事類 회화형식이다. 여기에는 祇園精舍의 건립을 둘러싼 佛敎徒와 外道의 幻術겨루기, 이른바 ‘鬪法’이 회화의 중심소재가 되어 흥미진진하면서 해학적인 화면이 전개되어있다. 이 畵題는 唐代 성립한 「降魔變文」을 소재로 하였다. 『賢愚經』권10 제41 「須達起精舍品」을 토대로 창작된 「降魔變文」은 이야기의 극적 재미를 돋우기 위해 여러 장치들이 고안되었으며, 불교포교 및 講唱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이 변문의 시각적 이해를 위한 圖解가 바로 노도차투성변상도이다. 勞度叉鬪聖變相圖는 중국 남북조대에 출현하여, 唐과 五代를 거쳐 宋代(北宋)까지 400년 가까이 돈황석굴군을 통해 발전하였다. 돈황 일대에서 이 畵題가 多作되었던 점은 당시 불교성격이나 정세에 비추어 귀의군들의 역할이 주목된다. 즉 귀의군들은 외족(티벳)에 오랫동안 강점되었던 이 지역을 다시 중국령으로 회복하였는데, 그들은 절대 통치권력을 행사하였으며, 佛事에도 매우 열정적이었다. 귀의군들은 종교적이고 포교소재로써 효능이 높으며, 이미 대중성을 확보하였고, 물리적 군사력의 중요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벽화소재(노도차투성변상도)를 적극 채용함으로써, 遺民 통솔의 정당성을 보장받고자 했던 듯하다. 만당 이래, 화사들의 노도차투성변상도 제작은 대부분 기성의 粉本을 참고 했으나, 동일 화면은 철저히 거부하였다. 이들은 화본을 토대로 독자성을 추구함으로써, 회화적 역량과 창의력을 드러내었다. 이중 돈황 막고 제196굴 <노도차투성변상도>는 이 화제로는 물론, 돈황후기 벽화의 전형성을 갖추어 양식적 검토 가치가 높다. 먼저 이 벽화의 제작시기는 893-894년이라는 구체적인 연대가 제시되어 양식사적 전후관계를 살필 수 있는 편년기준이 된다. 또 조건주체는 절도사 索勛과 고위직 승려로서, 당시 돈황일대에서 지배세력과 승단의 공조관계를 살필 수 있는 사례였다. 이 벽화의 회화양식은 構圖와 人物 · 景物 · 色彩 및 筆線 · 文樣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었다. 구도는 二元으로 전개되는 문학작품에 화사의 재량을 발휘하여 變文의 內容에 충실하면서 繪畵로서 형식성이 겸비되어 있었다. 인물표현은 인체에 대한 이해와 기교가 발달했던 唐代의 사실성을 기초로 익살과 해학성을 가미해 풍부한 인물상을 구현했다. 경물 역시 전대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이 벽화의 화면 내에서 형태적 다양성을 추구하였다. 색채는 중당대에 비해 단조로워졌으나, 색채 및 필선은 훈염채색법과의 혼용을 추구해, 중당대와 오대 및 송대의 과도적 성향을 나타내었다. 문양 역시 중당대 비해 간소해졌으나, 그 장식성은 아직 유지하였다. |
| 目次 | Ⅰ. 머리말 225 Ⅱ. 勞度差鬪聖變相圖의 성립 227 Ⅲ. 敦煌 勞度差鬪聖變相圖의 전개 238 Ⅳ. 莫高 제196굴<勞度差鬪聖變相圖> 의 특징 249 Ⅴ. 맺음말 262 |
| ISSN | 1975857X (P); 26715708 (E) |
| 點閱次數 | 173 |
| 建檔日期 | 2022.06.23 |
| 更新日期 | 2022.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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